『인간 실격』은 다자이 오사무가 인간 존재의 불안과 자기부정, 고독의 심연을 밀도 높게 기록한 소설로, 주인공 오바 요조가 자신의 삶을 “실격”이라 선언하기까지의 내면적 붕괴를 차분하면서도 잔혹하게 드러낸다. 작품은 요조가 남긴 세 개의 수기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극심한 괴리감을 느끼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두려워 끊임없이 ‘연기’하며 존재를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그 연기는 점점 불가능해지고, 그는 사랑, 술, 약물, 타인에게 의존하는 삶 속에서 조금씩 파괴되어 간다. 요조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살가운 광대처럼 행동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인간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두렵고, 인간을 이해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낀다. 이 소설은 그의 고백을 따라가며 ‘인간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게 만드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의 괴리 — ‘사람들 속의 공포’를 감추기 위한 광대의 탄생
요조의 수기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그는 타인의 표정, 말투,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이였다. 사람들이 웃을 때 왜 웃는지, 왜 화를 내는지, 왜 그들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리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이러한 감정적 이해의 결핍은 곧 공포로 이어진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몰랐고, 그 공포를 감추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바로 ‘익살’을 떠는 것이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웃음을 주며 자신의 불안을 가리고, ‘재미있는 아이’라 불리는 위치 속에서 생존했다. 그러나 그 익살은 진짜 감정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연기였다. 타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요조는 끊임없이 타인의 반응을 관찰하며,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 안전한지를 연구했다. 그 과정은 어린아이의 삶이라기보다는 공포에 찬 방어기제의 연속이었다. 요조는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소외감을 느낀다. 아버지는 정치가로, 집안은 부유했지만, 그 안에서도 요조는 자신이 ‘정상적인 인간’처럼 행동할 수 없음을 절감한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그는 유일하게 혼자 떠 있는 존재였다. 그의 유년 시절을 관통하는 감정은 외로움이 아니라 ‘근본적인 타자성’이다. 그는 자신이 인간 세계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고 느끼며, 그 상태는 성인이 된 이후 더욱 심화된다. 어린 시절은 그의 실격 선언을 이미 예고한 시간이었고, 그의 인생 전반에 드리운 어둠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청년기의 타락 — 사랑, 술, 약물, 그리고 ‘인간 흉내’의 붕괴
요조는 도쿄로 올라가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지만, 그가 가진 불안과 공포는 더욱 깊어진다. 그는 예술가 무리와 어울리며 술과 약물에 빠지고,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극단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회피한다. 그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쉽게 기대고, 특히 여성에게 의존하려 한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언제나 파국으로 이어진다. 요조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을 이해할 수 없고,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책임지는 법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의 온기를 포기할 수 없어서, 그 온기에 기대려다 불행을 반복한다.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요조가 함께 지내던 여성 요시코의 순수함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다. 요조는 그녀가 자신에게 보여준 따뜻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외부적 사건과 오해 속에서 그녀의 삶까지 무너뜨리고 만다. 요조의 술과 약물 중독은 단순한 타락이 아니라, 인간 세계와 연결되는 끈이 끊어지는 과정이다. 그는 ‘인간 흉내’를 내기 위해 쓴 에너지가 점점 고갈되고, 결국 연기의 능력조차 잃게 된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던 광대는 더 이상 무대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그 결과 요조는 극심한 자괴감에 빠진다. 그의 정신적 붕괴는 자신에 대한 철저한 혐오를 낳는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괴물’이라 부르며,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선언한다. 이 시기의 요조는 자신이 어떤 생명체인지조차 모르는 불안에 압도되어, 결국 삶의 방향을 완전히 잃는다. 이 단계는 인간 실격의 문턱에 도달한 시기로, 그가 더 이상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완전한 붕괴 — “나는 인간으로서 실격이다”라는 마지막 선언
소설의 후반부에서 요조는 완전히 무너진다. 그는 정신적·사회적·감정적으로 인간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한다. 요조는 요시코와의 관계가 파국을 맞이한 뒤 더 깊은 절망에 빠지고, 세상에 대한 공포, 자기혐오, 존재에 대한 불신이 최악의 형태로 확장된다. 그는 결국 정신요양시설에 수용된다. 그곳에서 요조는 인간 세계와 마지막 끈마저 끊긴 채, 자신의 삶을 하나의 실패작으로 바라본다. 요조는 자신을 “개와도 같고 돼지와도 같은 존재”라는 극단적 표현으로 묘사하며, 도저히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괴물이 되어버렸다고 느낀다. 그의 결론은 비극적이지만 담담하다. “나는 인간으로서 실격이다.” 이 선언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그가 평생 겪어온 공포와 불안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를 인간 세계에서 추방하는 행위다. 요조는 전쟁 직후의 황폐한 시대, 혼란 속에서 방황하던 청년, 그리고 시대가 만들어낸 고독의 화신이었다. 그는 타인과 연결되기를 바랐지만 끝내 이해받지 못했고, 이해하지도 못했다. 요조의 최종적 고백은 독자에게 깊은 슬픔과 동시에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실격인가?” 요조가 정말 실격이었을까, 아니면 그를 둘러싼 사회가 너무 가혹했을까? 소설은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사회가 약한 개인에게 어떤 폭력을 행사하는지, 우리가 누구를 인간으로 인정하고 배제하는지 묵묵히 되묻는다. 요조의 추락은 한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이해받지 못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붕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대의 초상이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비극적이지만, 그 고백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공명하며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불안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