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Do you like Brahms?)』는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Françoise Sagan)이 1959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사랑의 덧없음과 인간의 내면적 공허함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사강 특유의 냉정하고도 서정적인 문체 속에서, 사랑은 열정보다는 “지속되지 않는 감정의 반복”으로 묘사된다. 이 소설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는 심리적 초상화이며, ‘감정의 성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철학적 이야기다.
사랑의 공허함 -폴과 포시의 관계
주인공 포시(Paule)는 마흔 살의 독신 인테리어 디자이너이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업과 세련된 감각을 지닌 여성이지만, 내면은 늘 공허하다. 그녀의 연인 폴(Roger)은 40대 중반의 사업가로, 바쁘고 현실적인 인물이다. 두 사람은 5년째 관계를 이어오고 있지만, 이미 그들 사이엔 열정이 식어버린 상태다. 폴은 포시를 진심으로 좋아하지만, 일과 사교, 그리고 자기중심적인 세계 속에서 그녀에게 온전히 헌신하지 못한다. 포시는 그런 그를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외로움을 느낀다. 그녀는 ‘안정된 관계’와 ‘사라져버린 사랑’ 사이에서 흔들린다. 폴은 늘 늦게 찾아오고, 포시는 그를 기다리며 지친다. 그녀는 어느 날 저녁, 그에게서 또다시 ‘바쁘다’는 말을 듣고 무심하게 식사를 마친다. 그때 우연히 젊은 청년 시몽(Simon)을 만나게 된다. 그 만남이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사강은 이 관계를 통해 ‘성숙한 사랑’의 이면에 있는 지루함과 권태를 포착한다. 포시의 나이와 지위, 그리고 폴의 무심함은 단지 시대적 배경이 아니라, 인간이 관계 속에서 느끼는 근원적인 외로움을 상징한다.
새로운 사랑 - 시몽의 순수함과 포시의 흔들림
시몽은 25세의 젊은 남자로, 폴과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그는 감정에 솔직하고, 포시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들은 ‘브람스의 음악회’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다. 시몽은 그녀에게 말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 한마디가 소설의 상징적 문장으로 남는다. 이 대사는 단순한 호감의 표현이 아니라, 그녀의 내면을 건드리는 질문이었다. 포시는 브람스를 좋아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나이 든 사람의 음악’이라 생각한다. 그 말 속에는 ‘나는 젊지 않다’는 자각이 스며 있다. 시몽은 그런 그녀를 향해 말한다. “나는 당신이 젊지 않다는 게 좋아요. 그건 당신이 진짜라는 뜻이니까요.” 그의 순수한 고백은 포시의 굳어버린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다시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불안해한다. 그들의 나이 차이는 무려 15살. 포시는 그 사랑이 오래가지 못하리란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시몽에게 끌린다. 그의 젊음은 단지 육체적인 매력이 아니라, ‘다시 살아 있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녀는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의 온기를 느낀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사랑의 달콤함이 깊어질수록, 현실의 그림자는 짙어진다. 포시는 자신이 결국 상처받을 것임을 예감하면서도, 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강은 이 모순된 감정을 “성숙과 미숙의 공존”으로 그려낸다.
사랑의 결말 ― 선택과 체념의 의미
시간이 흐르면서 포시는 점점 불안해진다. 시몽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너무 뜨겁고 빠르다. 포시는 그 열정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임을 안다. 그녀는 그와 함께 있을 때는 행복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두렵다. 한편 폴은 포시의 변화에 불안함을 느낀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소유하려 한다. 그동안 무심했던 그는, 이제야 그녀를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두려움조차 진심이 아니라, 습관과 이기심의 산물처럼 보인다. 포시는 결국 시몽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너는 너무 젊어.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전부가 될 수 없어.” 그녀는 시몽을 사랑했지만, 동시에 사랑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녀의 이별은 현실적이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기보호이자 체념이었다. 이후 그녀는 다시 폴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관계는 예전과 같지 않다. 폴은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지만, 포시는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시몽과의 사랑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깨닫는다. “사랑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포시는 폴의 차 안에서 브람스의 음악을 듣는다. 창밖의 풍경은 흐릿하고, 음악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예전의 여인이 아님을 느낀다. 그녀는 사랑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고요히 미소 짓는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성숙한 이해’였다. 사랑은 사라져도, 사랑했던 시간의 기억은 남는다. 그 기억이 그녀를 지탱한다.
사강이 말하는 교훈 ― 사랑의 본질은 완벽하지 않음에 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단순히 ‘연상의 여인과 연하의 남자’라는 로맨스를 넘어, 사랑의 덧없음과 인간의 외로움을 철학적으로 탐구한 작품이다. 사강은 이 소설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우리를 완성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안의 결핍을 드러낸다.” 포시의 여정은 이 문장을 증명한다. 그녀는 폴과의 안정된 관계 속에서도 외로웠고, 시몽과의 뜨거운 사랑 속에서도 불안을 느꼈다. 그녀는 결국 진정한 행복이란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브람스의 음악이 소설 속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 음악이 바로 그런 인간의 감정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슬프지만 아름답고, 불안하지만 따뜻한 선율. 그것이 바로 사랑의 본질이다. 결국 포시는 완벽한 사랑을 얻지 못했지만, 그녀는 ‘사랑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 “사랑은 젊음의 감정이 아니라, 용서와 이해의 감정이다.” 사강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통해 사랑의 본질을 잔잔하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를 사랑하나요? 그리고 그 사랑을 어떻게 견디고 있나요?” 그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랑은 완벽하지 않지만,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감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