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Fish Don’t Exist)』는 과학사, 자기 고백, 심리학, 그리고 철학적 에세이가 절묘하게 얽힌 독특한 논픽션으로, 미국 과학 저널리스트 룰루 밀러(Lulu Miller)가 5년에 걸쳐 고생물학자이자 분류학자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의 삶을 추적하며 써낸 작품이다.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한 농담도, 과학적 수수께끼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분류 체계가 얼마나 허술하고,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쉽게 붕괴되며, 또한 삶을 지탱하던 확신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철학적 선언이다. 이 책의 줄거리는 조던의 생애를 따라가지만, 동시에 저자 자신이 살아오며 겪어온 불안, 질서에 대한 집착, 그리고 무너진 자존감의 재건이 교차하며 흐른다. 결국 이 책은 ‘질서를 향한 갈망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기도, 파괴하기도 하는가’에 대한 우아하고도 집요한 탐구다.

혼돈 속의 질서를 좇던 남자 —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집착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19세기 말 미국 최고의 어류학자이자 스탠퍼드 대학 초대 총장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천 종의 물고기를 채집하고, 그들의 형태를 기록하고, 분류 체계를 만들었다. 조던에게 물고기는 단순한 연구 대상이 아니라 혼돈 속에서 질서를 끌어내는 ‘증거물’이었다. 그의 삶은 극단적인 집념의 연속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표본을 모았고, 밤새도록 물고기 해부를 하며 새로운 종을 정리했다. 그는 자연의 복잡함 속에서도 ‘이름이 붙여진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집착은 비극적 순간을 맞는다. 오랜 시간 모은 표본들이 보관된 연구실에 지진이 일어나, 수천 개의 병이 바닥에 쏟아지고, 표본의 꼬리표가 사라져버린다. 어떤 것이 어떤 종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던은 절망하지 않는다. 그는 커다란 방패핀(정강이를 고정하는 바늘)을 가져와 표본에 하나씩 꽂아 다시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무너져도, 그는 손에서 질서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저자는 이 장면을 “혼돈 앞에서 질서를 다시 붙잡으려는 인간 본능의 극단적 사례”라 말한다. 그러나 조던의 질서에 대한 열망은 곧 과학적 집착을 넘어 ‘위험한 믿음’으로 확장된다. 그는 인간 사회에도 고정된 서열과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며 우생학적 사상을 적극 옹호한다. 그의 분류 체계는 자연계에서 멈추지 않고 인간에게도 적용되기 시작했고, 이는 치명적인 윤리적 폭력으로 이어졌다.
물고기는 정말 존재하지 않는가 — 분류의 붕괴와 과학의 역설
저자 룰루 밀러는 조던의 삶을 연구하던 중,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물고기라는 생물학적 분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진화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물고기’라고 부르는 생물들은 서로 밀접한 공통 조상을 공유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물고기는 인간과 더 가까운 종도 있다. 즉, 물고기라는 범주는 ‘편의적 묶음’일 뿐, 생물학적 실체가 아니다. 이 발견은 조던의 평생 업적을 뒤흔드는 일이었다. 그가 집착했던 질서, 이름 붙이기, 분류하기라는 모든 행위는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의 틀에 불과했다. 저자는 이를 통해 한 가지 무서운 진실을 마주한다. “우리가 믿는 세계는 대부분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다.” 분류는 안전함을 주지만, 동시에 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인간의 뇌는 복잡한 세계를 버티기 위해 카테고리화하고, 선을 긋고, 구분하려 하지만, 실제 세계는 그 경계를 비웃듯 넘나든다. 룰루 밀러는 조던의 집착적 분류의 인생을 바라보며 자신이 평생 매달렸던 ‘질서’라는 단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녀 역시 삶의 혼란을 이겨내기 위해 규칙, 계획, 성실함, 분류 같은 것들에 의지해왔지만, 그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을 살아냈다. 조던의 인생은 그의 집착을 찬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그 집착이 그를 오만과 폭력으로 이끈 비극적 경고가 된다.
저자의 이야기 — 무너진 질서 속에서 자신을 다시 세우다
룰루 밀러는 조던을 취재하는 동안 자신이 잃어버렸다고 느끼던 삶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규칙’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애인의 이별, 진로의 실패, 가족의 아픔, 자기혐오… 그녀는 안정적 구조가 무너질 때마다 자신의 가치를 의심했다. 그래서 조던의 이야기에 더욱 매료되었다. 그는 모든 것이 부서져도 다시 표본에 꼬리표를 붙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사를 거듭하며 그녀는 깨닫는다. 조던의 ‘질서를 향한 욕망’은 그를 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오류로 끌고 간 힘이었다. 분류가 완벽하다고 믿는 순간, 인간은 타인을 서열화하고, 열등을 만들어내고, 억압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저자의 내면에도 파동을 일으킨다. 그녀는 말한다. “질서에 대한 집착은 때로는 자신을 괴롭히는 족쇄가 된다.” 삶은 예측할 수 없고, 나라는 존재 또한 완벽한 구조로 정리될 수 없다. 조던의 실패는 저자에게 새로운 통찰을 준다. “혼돈을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다시 살아난다. 그녀는 완벽히 정리된 세계가 아닌, 흐트러진 세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법을 배운다.
혼돈을 사랑하는 법 — 책이 남기는 가장 큰 교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간단하지만 강렬하다. “세상의 질서는 인간이 만든 환상이다. 그러니 그것에 짓눌릴 필요가 없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믿는 많은 분류는 실제가 아니라 편의적 장치일 뿐이다. 우리는 정확한 기준을 좋아하지만, 그 기준이 때로는 우리 자신을 옭아매는 굴레가 된다. 이 책은 말한다. • 실패는 분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인간은 ‘정해진 자리’가 없다. • 삶은 선형적이지 않다. • 혼란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조던이 평생 쌓아올린 분류 체계가 무너진 것은 비극처럼 보이지만, 저자에게는 새로운 철학의 시작이었다. 질서가 전부가 아니며, 혼돈은 실패가 아니라 ‘살아 있는 세계의 본래 모습’이라는 통찰. 저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혼돈은 우리를 파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 된다. 분류되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는 용기, 질서가 무너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이 책은 우리가 존재를 정의하던 낡은 틀을 부수고, 혼란을 끌어안는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나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