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조세희의 연작소설집으로, 산업화 시대 한국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을 여러 단편을 통해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책 전체에는 거대한 서사 하나가 흐르기보다는, 가난한 노동자 가족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의 시점과 목소리가 파편처럼 흩어져 하나의 거대한 현실을 이루는 방식이 사용된다. 특히 ‘난장이’로 지칭되는 김불가(김춘수 혹은 김불구로도 표기되는 인물)와 그의 가족이 처한 빈곤, 재개발로 인한 강제 철거, 구조적 폭력은 대한민국 산업화가 만들어낸 상흔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은 절망을 그리면서도, 인간이 마지막까지 잃지 않으려는 아주 작은 희망—즉 작은 공—을 향해 시선을 두며, 삶이 무너져도 여전히 미래를 바라보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묵직하게 담아낸다.

가난한 가족의 현실 — 철거와 빈곤 속에서 무너져 가는 삶
연작의 중심에는 난장이(김불가)를 가장으로 둔 가족이 있다. 그는 왜소한 신체 때문에 ‘난장이’라 불리지만, 사실 그 별명은 단지 육체적 형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를 ‘작은 존재’로 규정하고 밀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그는 성실한 노동자였지만 재개발이라는 이름의 국가적 사업 앞에서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가족은 좁고 낡은 구두공장을 운영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지만, 공장은 기술 경쟁에서 뒤쳐지고 산업 구조가 빠르게 변하면서 서서히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가장 큰 비극은 강제 철거 과정이다. 집은 ‘개발의 진보’라는 이름 아래 헐값에 수용되고, 난장이 가족은 책임지지도 않았던 시대의 속도에 쓸려 난민처럼 방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과 싸운다. 맏딸 영희는 생계 때문에 몸을 혹사하며 공장에서 일하고, 아들 영수는 점점 사회 구조의 부조리에 눈을 뜨며 자신의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막내 영호는 생존과 저항 사이에서 흔들린다. 이 가족의 서사는 단순한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장하던 국가가 약자를 어떻게 희생시켰는지, 삶의 기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존재를 지키려 했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이 된다. 특히 난장이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끝까지 선한 마음을 잃지 않지만, 그 선함이 구조적인 폭력 앞에서는 너무나 무력해 보인다. 이는 작품 전체에 깊은 슬픔과 질문을 남긴다: 과연 성실함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있었던가?
사회 구조의 폭력과 개인의 저항 — 절망 속에서도 이어지는 작은 희망
이 연작의 가장 큰 힘은 서로 다른 인물들의 시선이 교차하며 사회의 부조리를 다층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영수는 노동 현장의 불합리와 자본의 냉혹함을 직접 목격하면서 점점 현실에 대한 저항 의식을 품게 된다. 그는 도시의 발전이라는 외피 뒤에 숨은 착취 구조를 꿰뚫어 보기 시작하고, 결국 그가 마주한 선택의 끝에는 폭력적인 방식의 저항 가능성까지 스멀스멀 떠오른다. 또 한편으로, 영희의 서사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깊고 날카롭게 드러낸다. 그녀는 공장과 집 사이에서 끝없는 노동을 반복하며 가족을 지탱하지만, 그녀의 헌신은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녀의 삶은 누적된 피로와 억눌린 감정으로 채워져 있고,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희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들의 고통은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개발이라는 이름의 폭주, 자본의 확장 논리, 노동에 대한 무관심, 국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all of these는 작품 속 인물들이 마주한 절망의 공동 원인이다. 하지만 작품은 절망만을 말하지 않는다. 곳곳에 아주 작은 희망의 조각들을 배치한다. 서로를 지켜주려는 가족의 마음, 친구를 향한 우정, 부조리를 깨닫고도 끝내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등, ‘작은 공’처럼 작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희망이 등장한다. 그 희망은 거대하지 않지만, 난장이가 하늘로 던진 작은 공처럼 밝고 가볍게 빛난다. 그것은 결국 인간이 끝까지 붙잡고 싶은 의지이며, 삶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하는 마지막 힘이다.
비극적 결말과 상징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의미
연작의 후반부에는 난장이 가족의 비극이 절정에 달한다. 가장 난장이는 개발의 논리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거대한 구조에 스러지고 만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산업화 시대의 약자들이 겪었던 집단적 파괴의 상징이다. 막내 영호와 영수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지만, 그 과정에서 마주한 세계는 여전히 잔인하다. 영수는 폭력적 저항의 유혹에 놓이고, 영호는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채 흔들린다. 영희는 가정과 노동이라는 이중 착취 속에서 스스로를 점점 잃어간다. 작품의 마지막 이미지는 독자에게 강렬한 잔상으로 남는다. 난장이가 던진 작은 공—그 공은 사라지지 않고 하늘로 날아오르며 희망이 아직 완전히 꺼진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그 공은 약자의 목소리, 인간다움의 마지막 흔적, 그리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조용한 저항의 상징이다. 결국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한국 사회의 산업화 이면을 드러내는 사실적 고발문학이자,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인간 정신의 기록이다. 작가는 말하지 않지만 독자는 느낀다. “이건 지나간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반복되는 구조적 폭력, 불평등, 소외의 문제이자, 우리가 계속해서 마주하고 응답해야 할 질문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