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범』은 ‘진실’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취약하고, 또 얼마나 쉽게 사람의 손끝에서 형태를 잃는지 깊게 파고드는 심리 미스터리다. 이 소설은 단순한 범죄 추적이나 스릴러의 긴장감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한 사건이 여러 인간의 의식을 통과하며 어떻게 왜곡되고, 또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며 ‘가공된 진실’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데 집중한다. 그래서 제목이 말하듯, 소설 속 범죄자는 단순히 살인자나 범법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선택적으로 편집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작품은 한 사건을 중심으로, 그 사건에 연루된 이들의 시점이 조각난 서사처럼 이어지며 복잡하게 얽힌 인간 내면을 드러낸다.

사건의 발단 — 한 청년의 죽음과 그 뒤에 숨은 진실
소설의 시작은 한 청년의 죽음이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사고사처럼 보이지만, 주변 인물들의 말이 하나씩 더해질수록 사건의 성격은 모호해지고, 독자는 점점 혼란에 빠진다. 청년은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특별히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인물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둘러싼 사람들의 진술은 서로 맞지 않고, 감정과 기억, 해석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 경찰은 처음에 단순 사고로 결론을 내리려 하지만, 청년의 가족은 그 죽음이 우연이라고 믿지 않는다. 가족은 아들의 주변인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그의 죽음 뒤에 ‘사람의 의도’가 있었을 가능성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진상 규명이라기보다, 죽은 이를 향한 죄책감과 미련, 그리고 사랑이 뒤엉킨 감정의 폭발에 가깝다. 문제는 어느 누구도 완전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은 말할 수 없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다. 청년의 친구들, 교수, 아르바이트 동료, 심지어 가족조차도 ‘사건의 전모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기억을 재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진실은 점점 더 멀어진다. 결국 청년의 죽음은 무엇보다 ‘해석의 전쟁’ 속에 휘말리게 된다.
진실이 무너지는 구조 — 사람들은 왜 기억을 가공하는가
소설의 가장 뛰어난 지점은 ‘진실의 파괴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청년의 지인은 각자의 상처와 불안,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사건을 기억하고 설명한다. 어떤 이는 청년을 순수한 피해자로 기억하고, 어떤 이는 그가 사건을 스스로 불러온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이는 그저 조용히 빠져나가기 위해 모른 척하거나 침묵을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기억’이라는 것이 절대 객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게 된다. 특히 소설은 인간이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억을 어떻게 편집하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예를 들어, 청년과 갈등을 겪었던 친구는 죄책감 때문에 자신이 했던 말이나 행동을 축소하거나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반대로 청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은 그의 행동을 지나치게 미화해,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보다 더 극단적인 감정을 덧씌운다. 이처럼 그 누구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점이 소설의 긴장을 이루는 핵심이다. 독자는 당연히 진술을 조립하며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려 하지만, 조각들은 서로 맞지 않고, 빈틈은 더 넓어져만 간다. 결국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얼굴을 지닌 채 흐릿해진다. 저자는 이를 통해 ‘우리가 믿는 진실은 대부분 자기방어적 가공의 산물’이라는 날카로운 통찰을 던진다. 그리고 그 가공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무의식적인지를 보여준다. 독자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과연 나는 진짜 사실을 알고 싶어 하는가? 아니면 내가 견딜 수 있는 사실만 보고 싶은 것인가?”
결말과 주제 —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후반부에서 진실이 점점 드러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하나의 버전’일 뿐이다. 어느 누구의 말도 절대적으로 옳지 않으며, 어느 누구의 기억도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 없다. 각자의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어내지만, 그 그림은 다시 한 번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이것이 정말 진실인가?” 아니, 소설은 단정하지 않는다. 마침내 청년의 죽음에 대해 가장 가까운 형태의 진실이 밝혀지지만, 독자는 그 순간마저도 선명한 결론을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진실’이라는 말 자체가 애초에 절대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미 충분히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진실이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저자는 진실이라는 것이 때때로 사람을 구원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떤 사람을 파괴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인간은 종종 자신조차 예상치 못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결론부는 독자의 마음을 씁쓸하게 하지만, 동시에 묘한 해방감을 남긴다. 이 소설은 진실을 완전히 밝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불안’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진실 자체’가 아니라,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상처를 바라보며, 누구의 마음을 외면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가공범』은 결국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이 믿는 진실은 정말 사실인가, 아니면 당신이 견딜 수 있는 버전인가?” 그리고 독자는 책을 덮은 후 오래도록 이 질문의 잔향을 품게 된다.